17명의 사상자 배출한 광주 붕괴 참사

광주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지 건물이 철거에 착수한 첫 날 무너졌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은 철거업체인 ㈜한솔기업(이하 한솔)에 하도급을 주고 철거를 진행하도록 했다. 계약을 맺은 한솔은 광주동구청(구청장 임택)에 해체계획서를 제출했고, 구청은 시명 건축사사무소 대표 A씨를 감리자로 지정해 철거 작업을 허가했다. 그러나 A씨는 ‘비상주감리 계약’을 체결했다며 사고 당일 현장에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경찰서의 수사결과, 현장에 있던 대부분의 작업자는 또 다른 철거업체인 ㈜백솔건설(이하 백솔)의 소속 직원들이었다. 해체 장비인 굴삭기를 다룬 기사가 다름 아닌 백솔의 대표로 드러난 가운데, 수사 초기 재하도급을 주지 않았다는 HDC현산 측의 주장과 달리 HDC현산 광주현장사무소장은 굴삭기 기사에 재하청한 사실을 인정했다. 


손뼉도 맞대야 소리가 나는데... 책임은 감리자만?

경찰은 감리를 소홀히 한 혐의로 현장 감리자로 지정된 시명 건축사사무소 대표 A씨를 구속했다. A씨는 해체계획서대로 철거되는지 등을 제대로 감리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감리자의 감리의무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문제는 HDC현산에도 물을 필요가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에 의하면 원청 업체도 철거사업을 관리할 의무가 있다. HDC현산은 “감리업체와의 계약관계가 없어 현장 상주 여부를 따질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모든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HDC현산 소속인 광주현장사무소장 등 현장 책임자들과 시공사 한솔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제63조에 따르면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하는 경우 자신의 근로자와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해야 한다. 한솔의 경우 건설산업기본법(이하 건산법)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건산법 제29조에 따르면 HDC현산이 한솔에 하도급을 줄 수는 있지만 한솔이 백솔에 재하도급을 준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이처럼 현장에 있던 모두가 역할을 다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실상이 드러나며 일각에서는 이들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무’와 ‘권한’의 불협화음

건축계에서는 해체계획서대로 공사를 진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단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그 근거는 해체계획서의 작성부터 이행까지, 세 단계로 정리된다. 우선 해체계획서의 작성이 무의미해지는 경우다. 현재는 해체계획서 작성자의 자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검증되지 않은 이가 계획서를 작성해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성 후 확인 단계를 거치긴하지만 작성자와 확인자가 동일한 사례가 존재해 문제다. 현행법상 건축물 해체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정리해 지자체에 허가받는 해체계획서의 검토는 △건축사사무소 △기술사사무소 △안전진단전문기관을 통해 검토하게 된다. 이번 광주 붕괴 참사에서는 부실한 해체계획서 작성과 형식뿐인 검토가 이뤄졌다. 

두 번째는 시공에 직접 착수하는 굴삭기 기사가 해체계획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사에 참여하는 단계다. 감리를 담당하는 건축사가 해체계획서대로 공사를 지시해도 현장에서 그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제대로 작성·검토한 계획서라도 무용지물이다. 건축사 B씨는 “감리자로서 현장에서 이의를 제기해도 공사가 중지된 사례는 주변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책임에 비해 권한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증언했다. 

이렇듯 감리자 한명에게 따르는 책임만큼 권한이 탄탄하지 못한 간극에서 건축사 한 사람이 시공 현장을 모두 감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재개발 현장의 경우 소규모 블록 단위로 나눠 해체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제도 개선이 돼야할 것이다. 또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현장에서 상주하는 감리자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기울여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현행처럼 비상주감리로 해체 감리를 수행할 수 있게 한 건축물 관리법도 우선 개정해 보완돼야 한다.

 

해체계획서 제도 빈틈 메우려면

건물 철거에 필수적인 해체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꾸준했다.

현행법에서는 관리자가 해체계획서를 작성토록 하고 있지만 비전문가인 관리자가 통상 안전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할 수 있는 철거업체에 의뢰해 작성되며 부실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번 광주 붕괴 참사의 후속 대책으로 정부 및 국회 입법 발의를 통해 다양한 개선 방안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중요한 이번 광주 참사에서도 드러난 △철거업체의 불법하도급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방안 △해체계획서 작성 시 부실 발생을 검토 보완할 수 있는 방안 △철거업체의 해체계획서 미준수 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 △감리자의 철저한 감리업무 수행 및 책임 강화를 위해 비상주감리를 상주감리로 개선하고 현장에서 불법 발생 시 즉각 공사중지시킬 수 있는 권한 강화 등 실질적인 제도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이번 광주 붕괴 참사와 유사한 사고로 언급되는 3년 전 잠원동 붕괴 사고 이후 허가대상인 건축물에 대해 상주감리하는 방침을 시행 중인 한편 각 자치구별로 해체감리 운영 사례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대부분의 허가권자는 해체허가 및 심의 대상 건축물에 대해 상주감리를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브리핑을 통해 해체공사감리자의 상시 해체공사감리 조항을 담는 것으로 법률을 개정하고 선도적으로 상주감리 현장에 대해 해체공자 중 3회 이상 불시점검을 예고했다. 

한편 우리회는 김재록 회장 취임 직후 최우선으로 해체공사 감리자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회원업무지원·해체공사감리 상담센터를 설치하고 해체공사감리메뉴얼 제작을 통해 해체공사감리업무 표준화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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